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올해의 봄이 마지막이 아니길... 95세 노모의 텃밭 하루

신실하심 2026. 3. 19. 15:19
728x90

춥다고 해도 봄은 오고 있었다.

냉이에 꽃이 만발해 더 이상 야들야들한 냉이는 지나갔고, 명자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다닥다닥 붙어 곧 우아한 꽃이 만발하게 생겼으며, 정원 한쪽에서는 언 땅 위를 덮고 있던 낙엽들을 헤치고 시퍼런 꽃무릇 이파리가 씩씩하게 올라와 있다.  

 

일주일 만에 본인 집에 오신 주인.

힘이 어디서 나는지 텃밭의 냉이와 민들레 등 야생초들을 캐시다, 어느새 잔디밭으로 이동해 잡초 불청객 뽑기에 열중하고 계신다.   

 

그 와중에 어른들의 텃밭 일이 궁금한 손자가 나와 노할머니 따라 잡초를 캐 보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듯. 그러다, 텃밭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거름까지(??) 주었다.  

 

사실, 봄 텃밭을 위해 가장 수고하는 이는 텃밭 집사 남편.

가지 치고, 불필요한 나무 자르고, 마른 가지 수거해 한 쪽에 모아 놓고, 텃밭 위에 거름 올려 흙과 섞어주고, 감나무에 거름 올리고, 텃밭 사이에 물길을 내주는 등, 큰 노동력을 들여야 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남편이 등장한다.

 

실내 놀이에 싫증을 느낀 손주들이 드디어 밖으로 나와 노할머니 텃밭 일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도라지 씨도 뿌리고, 땅 위로 올라온 지하수 관을 다시 묻으러 땅도 파고, 그러다 싫증 나면 자기들끼리 땅 밖으로 나온 곤충들을 찾아 잔디를 헤매기도 여러 차례...

 

이렇게, 텃밭에 찾아온 봄을 각자의 방식으로 맞이하면서 모두 새로운 한 해를 만들어 갈 꿈에 부푼다. 

노모는 씨를 심으며 열매를 소망하고, 나는 엄마의 그 소망이 올 한 해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응원하며, 남편은 몸으로 장모의 그 소망에 힘을 보태고, 증손주들은 텃밭에서 뛰놀며 노할머니의 소망에 활기를 더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할머니를 부축한 손녀가 노할머니처럼 꼬부랑 걸음을 걸으며 노할머니와 발을 맞춘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올해가 노모의 마지막 봄이 아니길 간절히 기도하였다.

'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헉! 땅 속에 뿌리 기둥이!  (0) 2026.04.20
잡초 불청객  (0) 2026.04.20
텃밭이 냉이밭~  (0) 2026.03.09
노모와 김장 놀이(?)  (0) 2025.11.20
25 감 따는 날의 풍경  (0) 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