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
주인의 부재가 길었음에도 텃밭의 가을 소출은 그다지 나쁘지 않아, 비록 벌레 먹은 배추라도 먹을만하게 자랐고, 무 역시 매끈하고 듬직한 시장 무 같지는 않아도 형제들끼리 조금씩 나눠먹을 수 있을 정도의 소출이 있었다.
어쩌면 텃밭을 그리워하는 연세드신 주인의 애타는 마음에 식물들이 스스로 힘을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텃밭 채소 뽑는 날.
텃밭에만 나오면 힘이 장사가 되는 노쇠한 엄마가 한쪽에서 제멋대로 자란 쪽파를 가지런히 정리하시고, 다른 쪽에서는 동생이 무청을 얌전히 다듬고 있다. 예전에는 무청도 벽에 매달아 말려 다음 해 가을까지 간간이 사용했었는데, 이번에는 관계하고 있는 무료급식소에 보낼 예정. 그래도, 내 것은 아무렇게 해도 되지만 주는 것은 깔끔하게 다듬어야 된다는 게 노모의 평소의 생각이시라 다듬는 자식들도 그 뜻을 받들어 예쁘게 정리하고 있다. 그게 바로 밥상머리 교육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텃밭 정리를 마치고 형제들과 적당히 나눈 후 내 몫의 텃밭 채소들을 집으로 가져와 어설픈(?) 김장을 하였다.
어지간한 무 5개를 채 썰어 배추 속 양념을 만들고, 절여진 배추를 몇 번 씻어 물기를 제거한 후 속을 집어넣어 통에 넣으니 겨우 김치통 2개.




한 주먹 정도 되는 무청으로 거친 무청 김치로 버무리고, 손자 주먹만한 작은 무 10개로 동치미를 담그니, 금방 끝이 났다.
예전 생각하면 김장 놀이(?) 수준.
그래도 굳이 이 일을 하는 건, 90 평생 겨울되면 김장을 한 후 뿌듯해하셨던 엄마께 올해도 당신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드리고 싶어서였다.


김장을 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었다.
한달 후, 거친 무청 김치도 어지간히 삭아서 먹을만 하게 되었고, 동치미도 엄마 집 베란다에서 숙성된 것만큼은 아니지만 꽤 맛이 좋아 5살 손자의 최애 김치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와 함께 하는 소소한 김장놀이(?)를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언뜻 답을 할 수 없다는게 무척 아쉬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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