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노쇠해지시는 엄마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텃밭 일지다.
그 엄마가 명절 연휴 기간 제주 큰아들네에 가 있던 내게 '고구마를 벌써 캤어야하는데, 우리 집이 제일 늦었다' 한 걱정하시며 전화를 하셨다.
17년 째 텃밭 집사라 엄마가 계시지 않은 중에도 매주 엄마 집 텃밭을 관리했지만, 주인이 하란대로 움직이는 시종인지라 고구마를 캘 생각은 조금도 해 보지 않은 상태.
그 다음 주말, 꼭두새벽부터 고구마 캐기에 돌입했다. 마침 미국에서 온 작은 아들과 함께 남편이 먼저, 고구마줄기를 거두고 삽으로 땅을 뒤집어 고구마를 캐기 쉽게 흙을 흩뜨리면, 나는 쪼그리고 앉아 호미 끝으로 고구마의 둔탁함이 느껴지는지 탐색하며 흙을 계속 팠다. 그러다 땅 속의 고구마가 하나 둘씩 드러나는데 모양이 제각각이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구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작고, 뚱뚱하고 길고... 참 달라도 너무 다른 녀석들이다.
하지만, 모종을 심은 후 사람의 수고 없이, 하늘이 내려주는 비와 햇빛만으로 오롯이 자란 고구마라 제각각인 고구마들의 나타남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마트에서 돈 주고 산 식재료들로 조리하는 음식에 익숙했던 내가 엄마의 텃밭 덕에 하늘과 땅이 만들어 내는 먹을거리들을 경험해 온 지 십 수년 째.
텃밭에 있는 식물들의 모종이나 씨로부터 열매가 맺히는 성장 과정을 해마다 지켜본 사람으로, 모양이 어떠하든 시간이 지나면 빚어져 나오는 그 열매들이 귀하고 신기해서 ' 예쁘고 잘난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각각'인 모든 것들이 보물로 보인다.
이 고구마들 모두 제멋대로여서 더 훌륭한 텃밭의 걸작품이다.
사람이나 인생도 그와 같지 않을까?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하늘의 햇빛과 비와 눈과 바람과 향기를 맡으면서도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빚어지니, 각각의 인생이 하나님의 걸작품이라 여기면 과한 생각일까?
텃밭 작물들을 통해 창조 세계의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내 자신이 그 창조 세계의 일원이란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음을 되돌아보며, 한 눈을 팔았던 나의 시선을 다시 삶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 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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