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는 텃밭에 매주 출동한 지 벌써 4주째.
치료 때문에 서울 동생집에 머무시면서도 마음은 텃밭에 가 계신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대화라기보다는 그저 일방 통행으로 주시는 텃밭 정리 mission이다.
쪽파 캐서 망에 넣어 지하 벽에 걸어놓기, 마늘 캐서 줄기 자르고 널어놓기, 보리수 따기, 머윗대 잘라 정리하기, 상추 솎기 등등.
아침에 두 손주 등원, 등교시키고 곧바로 엄마 집에가 일하고 오후 2시까지 나의 일터로 복귀하려면 일할 시간은 최대 3시간으로 남편과 둘이서 숨만 쉬고 일해도 쉽지 않은 미션이다.
그래도 어쩌랴!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게 나의 효도 방식이니 엄마 집에 도착하자 집 안 문을 모두 열어 환기시킨 후, 남편은 감나무로 나는 텃밭으로 향했다.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게 영 어렵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없어 닥치는 대로 시작했다. 뙤약볕에서 상추 솎으며 잡초 캐고, 머윗대 잘라 한쪽에 모아 놓으며 또 잡초를 뽑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 잠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음은 땅 위로 살짝 올라 온 골파씨 캐기. 호미로 딱딱한 땅을 파면서 다른 한 손으로 골파씨를 살살 꺼내 흙을 털어내야 되는데, 쭈그리고 앉아 땅을 파다 골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알이 너무 작아 버릴까 건질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골파 캐기를 모두 마쳤다.
이제는 마늘밭 차례. 퇴약볕에 마늘대가 모두 녹아 땅 속 깊이 박힌 통마늘을 온전히 캐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시간은 자꾸 흘러 출발해야 할 시간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마음이 급한 만큼 손놀림이 따라와 주면 좋겠구먼 도무지 몸이 마음을 따라와 주지 못해, 애꿎은 남편에게만, 텃밭과 화분에 물 주시오~ 솎은 상추 봉지에 넣으시오~ 열어놓은 창문 모두 닫으시오~ 요청을 하는데, 남편은 고구마밭 잡초를 뽑고, 익은 보리수를 따고, 고춧대를 더 단단히 묶어주느라 대답이 없다.






어찌어찌해서 엄마가 요청하신 일들을 대충 마치고 나서야, 겨우 꽃밭에 눈이 갔다.
백년초 노란꽃이 뜨거운 햇빛과 만나 더 반짝이고, 죽기 직전이던 카랑코에 작은 줄기에 빨간 꽃 두 송이가 활짝 피었다.
경이로운 생명 빛이다.
계단 옆에서 주인 없는 집을 환하게 지키고 있는 다홍빛 손가락 선인장꽃과 정원 한 쪽에서 떼 지어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주황빛 나리꽃을 보니 텃밭 정리하느라 빠진 기운이 다시 소생되는 듯했다.
놀라운 은혜의 꽃바다다.





어쩌면, 편찮으신 주인이 내려주신 텃밭 정리는 'mission possible'이었나보다.
덕분에, 텃밭 정리하면서 만난 흙과 식물, 그 밑에서 안식을 누리던 수많은 벌레 생명들을 통해 하나님의 정원을 좀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고, 세상 일로 복잡하던 머리 속이 정화된 듯한 느낌이 들어 다가오는 시간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 건 특별한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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