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막내딸의 임신 소식이 얼마전 들려왔다. 사돈댁에는 첫 손주라 감사하면서도 한편 나처럼 입덧이 심하면 어쩌나 싶어 맘 한켠에 걱정이 살짝 스며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출장 중 잠시 딸애를 만나고온 남편이 도무지 음식을 먹지 못해 기운 못차리는 딸의 소식을 전하면서 누군가 옆에서 조금이라도 먹게 해줘야할것 같다며 내가 잠시 다녀오는게 좋겠다고 한다. 어쩌자고 나를 닮냐!ㅠ
임신 7, 8개월까지 음식만 먹으면 토해서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냈던 내 젊은 시절이 다시 떠올라 내 맘도 급해졌다. 마침 사위도 공부 마무리 땜에 한국에 나와 있는터라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딸을 생각하니 잠깐이라도 가서 도와줘야겠기에 회사 일을 당겨 처리하고 2주간의 시간을 확보했다.
딸집에 도착 후 첫 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와서 냉장고 검사부터 시작했다. 냄새 땜에 냉장고 근처에도 못가고 시리얼과 우유, 얼음, 몇 가지 과일로 연명하고 있던 딸을 방에 가두고(?) 냉동칸과 냉장칸에 있는 식재료들을 스캔한 후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리스트 업하여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을 고르라 했더니 일단 미역국이란다.
에그 겨우 미역국..
그래도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불현듯 30여년 전 미국 유학 시절, 둘째와 세째를 임신하고 꼼짝없이 누워지내던 때가 떠올랐다. 먹으면 토하는 괴로움 중에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던 음식들을 생각해낸 후 남편이 겨우 비슷하게 준비해 준 그 음식을 한번 뜨고는 또다시 토해내는 기막힌 시간들을 보낼 때,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기막혔을까!
지금이야 한국과 미국이 지근거리에 있는 것처럼 일년에도 몇번씩 왕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엔 국제전화 한통 걸기에도 수십번 고민해 고작 한달에 한번 10분 정도 통화하는게 일상이었으니 딸의 입덧도 맘으로만 애태울 뿐 뭔가 해줄 수 없는 한국에 계신 엄마의 심난한 고통도 엄청났으리라.
나 닮아 입덧이 심하니 어쩌면 좋으냐고 맘아파하시던 내 엄마를 기억하며 잠시지만 딸의 입덧을 가까이서 도울 수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건 엄마니까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의무(??) 아님, 특권(??)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