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눈꽃 세상

신실하심 2022. 12. 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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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땀 흘리며 가꾸던 텃밭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소리마저 삼켰는지 사방이 적막한데,

 

자세히 살펴보니

물기 없이 말라버린 가을 국화이지만 가지에 눈이 덮여 덜 추워 보이고,

장독 뚜껑 위에 올라앉은 눈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그란 웃음을 포근하게 보낸다.

와중에, 허리굽은 주인은 혹시 들릴 누군가를 위해 싸리비로 길을 내고

자기 집인 양 드나드는 길냥이들은 눈밭에 예쁜 무늬를 찍었다. 

 

소리가 없다고 사방이 죽은 건 아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마늘들은 눈을 이불 삼아 편안히 누워 눈 녹은 물로 입을 적시며 따뜻한 세상을 기다리고

부추, 냉이, 달래 등 봄을 기다리는 식물들도 땅 속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잠잠히 자신들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처럼, 이들은 자연의 섭리에 맞춰 일함과 쉼, 활동과 멈춤, 능동과 수동의 때에 반항하지 않고 맞춰감으로 해마다 적당한 소출을 내며 그들의 생을 충실히 만들어 가는데, 나는 어떠한가?

 

열심, 활동, 능동, 일함에만 길들여져 멈춤과 쉼 그리고 수동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어그러진 삶을 살고 있지 않는지...

 

어쩌면, 이런 나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오시는 기다림의 12월, 그것도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꽃 세상을 통해 멈춤과 쉼을 묵상하게 하신 것 같아 잠시 행복한 사색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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