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밭이라도 심겨진 작물에 따라 수확하는 시기가 다 달라 돌보는 이의 손길은 언제나 분주하다. 이 곳으로 이사오신지 12년 째인 엄마에게 텃밭은 태에서 시작해 어른이 되어가는 생명과 함께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아주 훌륭한 학습장이자 운동장이다.
그간 엄마의 텃밭은 부지런하고 깔끔한 주인의 손길 덕에 잡초 하나 없이 정원같은 텃밭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연세가 드시면서 허리가 굽어진데다 가끔 편찮으시고 나면 체중이 2-3킬로는 줄어들어 그만큼 텃밭 돌보는 일을 힘에 부쳐하시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늘 주말에 찾아뵙는데도 나를 더 간절히 기다리시는 것 같아 웬만하면 주말엔 엄마네 가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엊그제 태풍 타파 여파로 주말에 비가 내린다는 뉴스에 고구마밭을 정리해야하는 일에 차질이 생길까봐 노심초사하셨던 모양이다. '엄마 걱정 마셔. 모자쓰고 비옷 입고라도 고구마줄기는 모두 정리할께요'~~~
토요일에 반드시 하셔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온양온천 가시는거라 그 날도 아침 먹기 전 솎아놓은 무청을 씻어 소금에 절여 놓고 아침상을 부리나케 봐 같이 식사하고 바로 온양온천 행. 1시간 여 탕을 즐기고 5일장 가서 장을 봐 집에 오니 오후 1시 반 경. 오는 내내 고구마땜에 마음쓰시는 엄마를 안심시키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고구마 줄기 정리로 들어갔다. 비가 와 질퍽해진 땅에서 고구마까지 캐기에는 역부족이라 우선 고구마줄기를 모두 걷어내는 작업에 집중했다. 모자쓰고 긴 옷 입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 새 10 고랑 정도의 고구마줄기를 다 걷어 냈다. 산같이 싸인 고구마줄기 더미에서 고구마줄기 하나씩 잘라내 잎을 따고 껍질을 벗겨 삶아 말리는 일까지 하고 고구마까지 캐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운들여 해야하는 고구마줄기 걷어내는 일만 해도 반 이상 했다며 그제서야 기분이 좋아지신 엄마.
비에 젖어가며 일한 탓에 오실오실한 몸을 따뜻한 차로 달래며 오늘도 엄마가 원하시는 일을 해드렸다는 뿌듯함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피곤하지만 가벼웠다. 무엇이든 엄마가 원하시면 무조건 해 드리기-이게 내가 엄마께 드리는 효도 방식.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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