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텃밭 지기로 사는 즐거움

신실하심 2025. 9. 11. 17:13
728x90

 

 

겨울을 제외한 3 계절 내내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엄마 집 작은 텃밭.

 

9월 중순인 지금은 김장 무와 배추, 쪽파와 대파가 쑥쑥 자라고 있고, 부추는 씨를 내려고 가늘고 흰 꽃들이 한창이다.

고구마도 햇빛과 비를 먹고 튼실한 줄기를 열심히 만들고 있고, 가지와 고추도 적당히 소출을 내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호박도 잎을 무성하게 내면서 몇 개씩 호박 열매를 맺히고 있는데, 사실 구순이 넘은 주인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할 수 없다는 한가로운 생각을 갖고 계신다. 살아보니 한 끼 먹는데 필요한 먹을거리가 그리 많지 않더라며 욕심부리며 살 필요가 없다시면서...

 

그래서, 한 끼니를 위해 텃밭에서 채취한 건 풋고추 2개, 빨간 고추 1개, 호박잎 10장과 작은 가지 2개, 여기저기 웃자라 뽑은 달래와 부추와 어린 쪽파 조금. 

 

어린 시절에 잡수셨다는 옛날 된장국이 잡숫고 싶다시는 엄마의 말씀만 듣고 그 된장국을 만들어보았다.

 

작은 뚝배기에 쌀뜨물 붓고 다시 멸치 3마리, 된장 1 숟갈, 파 대신 부추 조금, 풋고추와 빨간 고추 썰어서 넣고 부글부글 5-10분 끓이면 된장국 완성. 옛날에는 두부도 귀해서 그 흔한 두부도 된장국에 넣지 않고 보리밥 한 사발과 훌훌 먹었다시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꽤 맛이 좋다.

살짝 칼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나는 일품 된장국이다. 남편도 이거 누가 끓인 거냐며 맛있단다. 내 솜씬데?ㅎ

 

호박잎 쪄 먹자는 엄마 말씀에 '그럼 엄마가 호박잎 따 주세요'했더니 10장 정도 끊어오셨다. 깨끗이 씻어 가지와 함께 찜기에 쪄 호박잎은 그릇에 담아 금방 만든 쌈장과 상에 올리고 가지는 집간장과 참기름 넣고 가지나물을 만들고, 뿌리까지 달린 야생 달래/부추/쪽파 한 줌은 함께 씻어서 겉절이로 무쳤다.

 

한나절 땀 흘려 텃밭을 정리한 후 텃밭제 채소들로 조리한 된장국과 호박잎쌈, 가지나물과 야생달래무침 한 상은 고기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 먹게 하는 기막힌 밥상이었다. 

 

이웃집에서 선물한 단호박 1개.

반으로 갈라 속을 파고 반 개는 찜기에 쪄 단호박샌드위치의 속재료로 사용하거나 갈아서 단호박죽 또는 수프로 사용하려고 냉동시켰고, 나머지 반개는 채를 쳐 부침개를 만들었는데, 달콤하고 부드러워 식구들이 잘 먹었다.

 

여분의 가지는 반으로 갈라 어슷 썰어 식용유에 살짝 볶아 식혀서 냉동시켰는데, 기분내고 싶은 날 가지솥밥을 해 먹을 예정.

 

이렇게 우리 집의 한 여름 주말 식탁은 텃밭에서 바로 따 온 몇 가지 채소들로 조리한 투박한 음식들을 만들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건 전적으로 엄마 텃밭을 좋아하는 내게 하늘이 허락한 선물이다.  

 

17년째 엄마 집의 텃밭 지기로서, 텃밭의 사계를 만끽하고, 땀의 소중함을 경험하며, 땅이 허락하는 만큼의 소출로 만든 거칠고 투박한 자연 음식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어 화려한 음식을 향한 그리움이 감소되는 진기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엄마의 텃밭 지기가 된 내게 텃밭은 노동밭이자 마트이고, 생각밭이자 글밭이 된 매우 소중한 곳이 되었다. 
 

'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멋대로 고구마  (0) 2025.10.13
솎기 & 이식(移植)  (0) 2025.09.22
무씨 심었다... 만세!  (3) 2025.09.01
감나무 그늘막  (0) 2025.09.01
일꾼 3인방  (7)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