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

노모의 94번째 봄

신실하심 2025. 3. 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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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사별하신 후 도시생활을 접고 텃밭 생활을 시작하신 때가 엄마 연세 78세.
나와 남편이 엄마 집을 방문하기 시작한 건 그후 2년 부터였다.
덕분에 엄마의 80대 이후의 삶에 몸으로 은혜를 갚게 된 지도 벌써 햇수로 16년째.
게다가 작년부터는 함께 살고 있는 손주 둘과 함께 방문하면서 엄마의 토요일은 한층 화려해졌는데...

매주 토요일 아침. 서둘러 준비해 엄마 집에 도착하면 오전 11시경. 나는 주방에서 점심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 꼬맹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숨바꼭질도 하고 노할머니 휠체어도 끌고 다니며 종횡무진 뛰어다니는데,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귀가 어두우신 노할머니께는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할 줄도 알고, 편찮으신 할머니가 죽을 잡수시면 자기들도 같은 상에서 죽을 먹는 센스도 있어서 구순 노모는 토요일마다 꼬맹이 증손자들을 은근히 기다리시는 눈치다.

 

식사가 끝나면 애들은 자기들끼리 놀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말하는 대로 척척 그려주는 노할머니의 그림 솜씨에 반해 노할머니와 함께 그림놀이도 하는데 이는 겨울철 풍경.

 

그런데, 이때가 남편이 텃밭을 둘러보며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보통 감나무 2그루에서 걷어들이는 감이 300~400개나 되어 엄마의 최애 과실나무인데, 엄마의 마음을 이미 감지한 남편이 센스 있게 감나무의 가지치기를 한 것.

 

사실, 매년 텃밭에 식물들이 자라는 봄에서 가을까지의 점심 식사 이후는 마당에서 작물들을 뽑고, 자르고, 다듬는 일이 시작되어 무척 분주한 때로, 꼬맹이들은 텃밭 여기저기를 야생동물처럼 뛰어다니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식들 생각하며 조금씩 심은 작물들을 제때에 정리하지 못하면 텃밭이 못쓰게 우거져 정갈한 노모의 마음이 애가 타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따뜻한 날의 오후는 대부분 텃밭 정리에 시간을 보내는데, 이때가 엄마도 본격적으로 힘을 내어 야외놀이를 하는 시간.


 
그러다, 겨울에는 오후 3시, 여름에는 오후 4시경 집을 나서서 온양온천으로 향한다. 매주 한 번씩 우리와 온천욕을 하신 지 벌써 16년째라, 한 주 정도 거르면 마치 목욕을 하지 못한 느낌이 드시는데다 체중의 변화나, 때를 미시는 모습과 손 힘 등, 엄마의 컨디션을 체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 특별히 더 신경을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증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올라타신 노모.
 
40여 분 걸려 늘 다니는 온천탕에 도착해 1시간 반~2시간 목욕하고 돌아오면 거의 저녁 7시경인데, 이때부터 초고속으로 저녁을 차려 함께 식사를 하고 노모와는 또 일주일 후를 기약한다
 

 

지난 주말, 엄마 집을 나서는데, 도무지 봄이 올 것 같지 않게 추운 바람 속임에도 화단에는 어느새 튤립과 수선화 싹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나 올라와 있어 깜짝 놀랐다.

엄마와 함께 맞는 16번째 봄이 어느새 우리 곁에 3-4cm만큼 더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엄마가 햇빛 아래 기지개를 켜시는 날이 곧 오겠구나 싶어 찬 바람에 움츠렸던 내 마음도 활짝 펴지는 듯했다.

올 한 해도 작년처럼만 건강하셔서 엄마와 작은 기쁨을 나누고, 더 많이 웃으며, 함께 텃밭을 일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다.

"엄마의 94번째 봄이 오고 있네요~~~ 우리와 함께 올해도 즐겁게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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