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

구순 노모의 루틴

신실하심 2025. 9. 1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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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 지 2달이 되어 간다.

 

자신의 천국 세상이라 여겼던 텃밭 달린 성환 집은 환기와 함께 텃밭을 정리해 주러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하기에, 우리 집에서 지내시는 6일 간 엄마의 평소 생활 루틴을 따르시도록 나름대로 배려를 하고 있는 중.

 

평생 쉴 새 없이 뭔가를 하고 사셨던 어르신이라, 우리 집에서도 늘 하시는 활동들이 있는데, 바로 독서와 성경 필사, 일기 쓰기와 간간이 그림 그리기, 바느질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소파 위에는 바느질 그릇을, 그 아래에는 그림 책상을, 그리고 침대 옆에 필사 책상을 놓아 드렸다.

 

텃밭 일을 적당히 하셔야 햇빛을 쪼여 밤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는데, 지금은 밖에 나갈 일이 없어 잠 안오는 밤에도 손에 연필까지 쥐고 쉬임 없이 독서를 하시는 것 같다. 그러다 눈이 아프면 잠시 누웠다가 다시 또 읽고, 읽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찾아보며 읽으시는 94세 노모의 탐구력은 어디가 끝일지...

 

'신약' 성경 필사도 디모데전서가 거의 끝나, 앞으로 디모데후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9권만 남은 셈으로, 요새 우리 집에서 성경 필사를 하는 또 한 명인 증손녀와 믿음의 경쟁(?)을 하시는 듯하다.

 

병원 입원 중에도 꾸준히 기록했던 일기도 여전히 매일 밤 기록하시는데, 사실 엄마의 일기는 별 말씀이 없으신 엄마의 마음을 짐작해 좀 더 잘 섬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라 가끔씩 훔쳐보는 중이다.

그 안에는 여전히 본인의 집으로 가고 싶은 소망과 그럼에도 혼자 계시기에 자신이 없는 부분까지 곳곳에 기록되어 있어 노쇠해 가는 어르신의 서글픔마저 읽게 되니 때로는 마음이 저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도록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창의적으로 관리하시는 구순 노모의 독립심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데, 애들 구멍 난 양말을 기우거나, 자투리 헝겊으로 골무도 만들고, 때로는 내 부탁에 간단한 수도 놓아주신다.

 

점점 바늘귀가 안 보인다고는 하셔도 어떻게 해서라도 바늘귀에 실을 끼워 바느질을 하시는 엄마의 모습은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86세에 처음 시작했던 수채화를 심심할 때 다시 그려보시라고 작은 책상을 준비해 드렸더니, 며칠 걸려 조금씩 그림도 그리셨다.

 

자신의 집을 그리워하시면서도, 가시지 못하는 상황을 슬퍼하기보다 또 다시 창의적인 시간을 만들어가시는 94세 울 엄마.

 

그 엄마가 오늘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다.

간단한 시술이라지만 노구가 버틸 수 있을까 마음 한 쪽에서 염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어젯밤 잠자리에서, 노할머니 안 계신 것이 좀 이상했는지 5살 손자는 '노할머니 안 계셔서 슬퍼요' 이러고, 초등 1년 손녀는 '노할머니 없어서 허전해요' 했다. 

 

'얘들아 나도 그래...  노할머니 시술 잘 되서 우리 집에 빨리 오시게 해 달라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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