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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먹은 사과의 변신

신실하심 2019. 9. 1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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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달리 농가의 주변에는 먹을거리가 아주 풍부하다. 특히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의 텃밭이나 근처 과수원 주변은 계절별로 다른 채소와 과일들을 실컷 누릴 수 있는 재미난 놀이터다.


엄마가 그 곳에 들어가 사신지 벌써 12년 째라 이웃들과도 꽤 친숙한 사이가 되어서 서로 왕래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 덕에 대체로 주말마다 엄마 집을 방문하는 나는 덩달아 얻어 먹는 과일과 채소들이 무척 많다.


태풍 링링이 지나간 후 주말에 엄마 집을 방문했더니, 이웃에서 과수농사를 지으시는 장로님댁에서 맛은 좋은데 약을 별로 치지 않아 벌레가 먹은데다 센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사과가 있으니 가져갈테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셨다. 워낙 장로님댁 풋사과가 맛이 있는 걸 알고 있는데다 조금 시간을 들여 깨끗한 부위를 발라내 잼이나 청 또는 말랭이를 해 놓으면 어지간한 간식보다 훌륭한 먹을거리로 변신시킬 수 있어 주저없이 장로님댁을 방문했다.


작은 봉지 하나 달랑들고 갔는데, 웬 걸 큰 마대자루로 4개에 사과가 가득. 순간 억 소리가 났다. 이거 보통 작업이 아닌데. 상품성이 없어 팔 수는 없고, 주변의 이웃들 모두 과수 농사를 짓고 있어 우리같은 도시 사람 아니면 아무도 가져가 품을 내어 조리하지도 않을테니, 그저 감사합니다하고 수레에 실어 엄마 집으로 날랐다.


그 때부터 작업 시작. 수도가 있는 마당에 큰 통을 놓고 4 자루의 사과를 모두 쏟아놓으니 300개 이상 되는 듯. 여러 번 씻어낸 후 채반에 놓고 물기를 살짝 걷어낸 후 깨끗한 부위를 발라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1/4로 갈라 속의 씨를 잘라내는 일까지. 세 사람이 달라붙어 했어도 네 시간이 지나서야 작업이 끝나 큰통으로 4개에 담을 수 있었다. 그날은 마침 올케가 있어서 사과잼 만든다고 한통 가져가고, 나머지 3통을 집으로 가져왔다.


집으로 오는 내내,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 말랭이가 먹기는 제일 좋지만 처리시간이 길어 생사과 보관이 어려울 듯해 한통은 말랭이, 또 한통은 사과조림, 나머지는 사과청을 만들기로 했다.


집에 오자마자 사과청을 만들기 위해 slow cooker에 사과를 넣고 약한 불로 조정해놓았다. 밤새 알아서 졸여질 것이라 다시 손볼일은 없다. 그 다음엔 가스불 위에 큰 냄비를 올리고 그 안에 생사과와 설탕을 넣고 불을 약하게 하여 뚜껑을 덮었다. 부글부글 끓기 전에 얼른 건조기에 사과를 얇게 저며 올려놔야 사과조림이 끓어 넘치는 걸 예방할 수 있다. (처음엔 사과껍질째 건조기에 말렸더니 좀 질긴 듯해서 두번째 건조부터는 껍질을 벗겨 과육만 말리니 훨씬 아삭거렸다. 껍질 째 말린 말랭이는 뜨거운 물을 부어 사과차로 먹으니 사과향이 꽤 진해 맛있었다)


사과청과 사과말랭이는 용기 안에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조리되지만, 사과조림은 끓어 넘치거나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꼼짝없이 불 옆에서 조절하느라 다리품을 꽤 팔았다. 한 사흘 저녁을 요 녀석들과 씨름해 얻은 소출을 손주들과 엄마, 이웃들과 즐겁게 나눴다. 사실 품을 판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사 먹는게 싼 듯한데 그래도 천연 사과말랭이와 사과조림(계피가루를 넣으면 더 상큼한데 어린 손녀들이 매울까봐 넣지 않았다)을 맛있게 먹는 손녀들과 사과청을 경옥고처럼 하루에 두 숟갈씩 푹푹 퍼서 잡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힘들여 품을 판 시간이 그리 아깝지 않은 마음이 든다.   


[참고]

사과청은 slow cooker에 생사과만 넣고 약한 온도로 세팅한 뒤 만 48시간만에 물기가 많이 걷히고 검정색으로 삭은 떠먹기 좋은 상태가 되었고, 사과말랭이는 껍질벗긴 생사과를 얄팍하게 저며 가정용 건조기에 나란히 펼쳐 놓은 후 65도, 22시간으로 세팅해 놨더니 바삭한 사과말랭이가 되었다. 사과조림은 사과파이용으로 사용해도 좋고, 이를 믹서에 갈아 냄비에 넣고 설탕을 좀더 첨가해 끓이면 사과잼이 된다. 땅콩버터 샌드위치에 잼대신 사과조림을 얹어먹어도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