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심 2019. 8. 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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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렸을 땐 고기 반찬이라야 어쩌다 한 번 먹는 귀한 음식인 반면 주로 채소 반찬으로 한끼 식사를 하였는데, 요새는 한끼 밥상에 채소 반찬을 올려 먹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이는 채소가 비싸서라기보다 조리 과정에 좀더 품앗이 들어야되고, 고기 위주의 음식에 길들여진 환경 탓은 아닐지...


그러다보니 다양한 채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채소 샐러드 정도? 그나마도 먹겠다는 의지가 있는 어른에게나 가능한 일이 되었다.  


특히 어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여러 식품들을 골고루 먹게 하려면 그만큼 어른들의 노력이 들어가야하는데 감사하게도 큰애네 손주들은 며늘애 덕분에 다양한 채소들을 거부감없이 잘 먹는 편이다. 특히 손주들의 채소 습관에 한 몫을 한 것이 바로 월남쌈.


지난 주에도 월남쌈을 준비한 며늘애 덕분에 아이들과 월남쌈 공작 놀이를 재밌게 하고 왔다.

상추, 양파, 콩나물 또는 숙주, 생버섯, 파프리카, 오이, 아보카도, 깻잎, 사과 또는 배, 참외 등 아삭한 과일, 토마토, 소고기 또는 돼지고기(보통은 구운 고기를 선호하나 양념불고기도 상관없음), 쌀국수, 새우나 오징어가 기본 재료. 파인애플도 있으면 좋고. 여기에 액젓과 고추소스만 있으면 준비 끝이다.


이번엔 급히 준비한 거라 위의 기본 재료에서 서너가지가 빠졌지만, 쌈 싸먹는 이들이 맛있게만 먹어주면 별 문제는 없다.


돌 반짜리 막내에게는 식판에 고기와 쌀국수, 오이, 사과, 파프리카를 잘라서 올려줬더니 포크로 손으로 정신없이 먹는다. 4번 정도 리필을 시켜줬다. 이젠 첫째와 둘째 차례. 본인의 접시에 채소로 얼굴을 만들어 하나씩 집어먹는 놀이가 시작되었다. 채소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어 색감도 좋으니 만들 때마다 다른 얼굴이 만들어져 깔깔거리며 맛있게 먹는다.


큰 손녀가 내게 접시를 내밀며 할머니가 만들어달라고 한다. 생양파, 생버섯과 깻잎을 싫어하는 큰손녀에게 눈썹은 상추로, 눈은 고기로, 코는 양파로, 파프리카로 귀를 만들고 숙주, 토마토 등을 이용해 혀 내민 얼굴이라고 주었더니 엄청 재밌어 한다. 싫어하는 생양파를 액젓에 살짝 찍어 먹더니 그런대로 괜찮은 모양인지 한 조각을 다 먹었다. 이 때가 여러 채소의 냄새와 식감을 음미하면서 다양한 채소를 혀에 익히는 시간이다.


이에 질세라, 둘째 손녀도 접시를 내밀기에 상추, 국수, 파프리카, 오이, 숙주, 토마토로 얼굴을 만들어 주며 액젓에 살짝 찍어서 먹어봐도 좋다했더니, 그대로 해 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기까지. 아마 맛이 괜찮았나 보다. 둘째는 그 후로도 생버섯 조각을 서너 개나 더 먹었다.


이런 채소 음식 놀이 덕분인지 세 손녀들은 돌이 지나 어지간한 어른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굳이 아이들 반찬을 따로 하지 않고도 한끼 식사를 어른들과 같이 하게 되었다. 


이처럼 여러 채소들을 별 거부감없이 잘 먹는 손녀들에게 나물 반찬 만드는 법을 전수할 날을 기다린다면 너무 오버일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