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깍두기
교회 바자회가 끝나고 주방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를 치우는 중에 발견된 자투리 무 조각들. 임자도 나타나지 않아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버리는 건 죄'라는 엄마의 말씀이 생각나 집으로 가져와 마침 푸석해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사과와 찬밥, 콩나물국에 젓국만 짜서 넣느라 반쯤 짓눌려버린 새우젓 등 B급 무와 비슷한 상태의 B급 양념 재료들로 깍두기를 담갔다.
자투리 무가 비닐에 곱게 싸여 있었지만 잘린 지 며칠 정도 지난 탓에 겉이 많이 말라 보였음에도 소금으로 살짝 절이니 제법 물이 빠져나왔다. 역시 무는 무!
무를 절이는 동안 커터기에 찬밥 조금과 푸석 사과, 짓눌린 새우젓 새우를 넣고 곱게 갈아 그릇에 넣고 쪽파 조금, 간 마늘, 국물 내려고 둔 대파 이파리 3 잎, 멸치액젓 조금, 고춧가루, 소금 등을 넣고 잘 저어 고운 빛 양념을 만들었다.
무에 비해 양념이 많은 듯 한데, 따로 남겨 놓기도 그렇고 B급 상태의 무라 양념 맛으로라도 먹자는 생각에 절인 무를 건져 양념으로 골고루 비벼 그릇에 담으니 몇 끼는 먹겠다.
좋고 맛있는 것들이 대우받는 세상이라, 혹자는 굳이 양념값만 더 들겠다고 할지 모르나, 덜 좋은 것, 못생긴 것, 덜 맛있는 것들을 모아 먹을만한 것, 그럴듯한 것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면 사실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다.
갓 무친 깍두기를 한 개 씹었는데, 식감이나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아 요 녀석이 어떤 맛으로 발효가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잘나지 않아도, 알아 주지 않아도 누구 손에 붙잡혔느냐에 따라 화려한 변신도 가능하니까.
마치 내가 하나님 손에 붙잡혀 지금의 내가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