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참외 정도 자란 무가 달린 무청 김치 (4차 솎음)
텃밭의 무는 자라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로 빨라서 기르는 입장에서는 성장을 보는 재미가 넘치는 채소다. 지난 주 6주 차에 3번째 솎아준 뒤 머리 뻗을 영역이 넓어진 탓인지 통통하게 살오른 녀석들이 많아져서 또 다시 자리를 넓혀줄 필요가 생겨 1주일 만에 4번 째 솎는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 시퍼런 무청도 굵어져 이번에 솎은 무청은 두꺼운 것은 발라내 시래기로 만들고, 무와 여린 무청 속대로만 김치를 담기로 했다.
솎아 낸 무청을 엄마가 한쪽에서 다듬는 사이, 난 텃밭 여기저기에 올라와 있는 야생 갓을 뜯고, 쪽파와 함께 엄마께 드린 후, 난 얼른 주방으로 들어와 찹살풀을 쑤었다. 마침 그 날은 고추장도 담가야 해서 덩달아 무청김치에 밀가루풀 대신 찹쌀풀을 쓰게 된 것.
엄마는 허리가 굽었지만, 워낙 일을 무서워하지 않으신 분인데다 손놀림이 빨라 앉아서 하시는 일엔 여느 장정 못지 않게 일을 마무리해 놓으신다. 엄마가 다듬은 무청을 씻어 소금에 절이는 동안 나는 부엌에서 김치 양념을 재빠르게 준비했다. 배를 갈아넣는 대신 풋사과를 양파와 채썰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매실청, 다진 새우젓과 액젓을 찹쌀풀에 넣고 잘 섞어 놓고 무청과 무가 절여 지는 동안 고추장을 담갔다. 1시간 여 후 절여진 무청 무를 앞서 준비해둔 김치 양념과 버무려 통에 담았다.
작년엔 무씨를 고랑에 솔솔 줄지어 뿌린 탓에 바트게 자라 7번 정도 무청을 솎아줬는데 올해엔 무씨를 1cm 간격으로 심은 터라 어쩌면 솎은 무청 김치 는 이번으로 끝날 듯 싶어 싱그러운 사과물이 찹쌀풀과 어우러져 시원한 국물을 낼 이번 무청 김치가 김장 전 마지막 김치가 될 듯 하다.
그 날은 고추장고 오이깍두기까지 담그느라 엄마와 잡담 한 번 할 새도 없이 묵언 수행하듯 보낸 하루였다. 엄마가 텃밭 생활을 한 이래 토요일마다 늘 일손을 맞춰 왔기에 엄마 혼자 또는 나 혼자는 결코 해 낼 수 없는 일의 양이지만 같이 함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들을 생각하면 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뿌듯하고 감사하다.
올해 미수(米壽)이신 엄마가 내년에도 나와 손발을 같이 맞춰 함께 텃밭 놀이(?)를 하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